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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순교성지

일반현황

  • 소재지 :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 [27821]
  • 책임단체 :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 전화 : (043)533-5710, 팩스 : 533-5721
  • 웹사이트 : www.baeti.org
  • 담임신부 : 이현로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약사

교회사의 기록에 진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난 것은 1813년 경입니다. 이때 충남의 홍주 덕머리 출신인 원(元) 베드로 형제가 박해를 피해 진천 '질마로'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배티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그 후 1830년 무렵으로 추정될 수 있습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가 거듭되면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신자들의 은신처가 되어 골짜기마다 교우촌이 늘어갔습니다.

배티 교우촌

1866년 병인박해 전 배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우촌은 삼박골, 정삼이골, 절골, 용진골, 발래기, 통점, 동골, 새울, 은골, 불무골, 모니, 소골, 지구머리, 지장골, 굴티 등 10여 군데가 넘습니다. 이곳에 모여든 신자들은 주로 충청도 지역교회의 중심지가 된 내포지방 출신 신자들이었고 일부는 경기도와 충주 출신이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순교자 55여명(교회역사에 기록된 진천 출신 순교자 29명과 배티 일대에 산재해 있는 무명 순교자 묘 26기)을 탄생시키고 일시적으로 와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그친 1870년 무렵부터 다시 이곳에 모여 복음의 새 터전을 닦아 나갔습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한국의 까따꼼바이며, 스스로 찾아온 복음의 진리를 온몸으로 살아간 신앙의 현장이며, 수많은 혈색 순교자와 백색 순교자를 배출한 순교의 땅입니다.

최양업 신부와 배티 교우촌

최양업(1821-1861) 신부는 한국인으로서 두번째 사제입니다. 그는 1836년 모방 나 신부에 의해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 유학을 떠나 서구사상을 처음으로 배운 한국 최초의 유학생입니다.

1907년 공주성당(현 공주 중동성당)의 공소로 설정되었으며, 1914년 일시적으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1919년 다시 대전성당(현 대전 목동성당)의 관할을 받았다.

그는 1849년 상해에서 강남교구 마레스카 주교님께 신품성사를 받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후 고국을 떠난 지 13년만인 1849년 12월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입국한 최 신부는 용인 학덕골과 진천 동골에 살던 동생들을 찾아본 후 즉시 신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위대한 목자요 백색 순교자입니다. 1861년 선종하기까지 12년동안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순회하며 목자없는 양처럼 지치고 방황하는 신자들을 찾아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과로로 죽은" 착한 목자입니다.

연혁

1977.09 장봉훈 신부 배티성지 소개 홍보물 제작 배포
1978.09 교구 순교자 현양대회 배티에서 개최
1985 박용수 바오로 신부 "십자가의 길"설치
1993.04.26 초대관리소장으로 장봉훈 신부 부임
1995.04.15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준비작업 개시
1996.03.01 성전건축 기공식
1997.04.15 배티성당 축성 봉헌식

미사시간

화요일~주일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