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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담화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2-2023년 제37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9-28 조회수 : 1459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2-2023년 제37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2022년 11월 20일 세계 젊은이의 날, 2023년 8월 1-6일 세계청년대회)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루카 1,39 참조)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것이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주제였습니다. 이 대회 이후에, 우리는 ‘일어나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긴급한 요청으로 마음이 불타올라 새로운 목적지인 2023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를 향한 우리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2020년에 우리는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지난해에도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은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일어나라. 내가 너를 네가 본 것의 증인으로 선택한다’(사도 26,16 참조). 리스본에 다다르기 전에 우리가 계속해서 가야 할 길을 나아가는 동안, 주님 탄생 예고를 듣고서 곧바로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난’(루카 1,39 참조) 나자렛의 동정녀께서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주제의 공통점은 ‘일어나다’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은 우리에게 잠에서 깨어나라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삶을 의식하라고 말합니다. 이 뜻을 기억합시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의 혹독한 경험으로 이미 시험을 받은 우리 인류 가족이 전쟁의 비극에 시달리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마리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당신과 같이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친밀함과 만남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가 내년 8월에 리스본에서 하게 될 경험이, 젊은이 여러분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또한 온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을 여러분과 함께 보여 주리라고 저는 희망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마리아는 일어났다

마리아는 주님 탄생 예고를 듣고 나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만 몰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리아는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겼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떠올렸습니다. 마리아는 일어나 삶과 활기가 있는 세상을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놀라운 말은 마리아의 계획들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만, 젊은 마리아는 꼼짝 못하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자신 안에 부활과 새 생명의 힘이신 예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살해되셨지만 살아 계시는 어린양을 자신 안에 이미 품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일어나 길을 떠납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자기 삶을 위한 최고의 계획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순례하는 교회, 봉사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는 교회,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교회의 표상이 됩니다!


우리 삶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 곧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가장 큰 영적 기쁨,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빛의 폭발입니다. 마리아는 다른 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만남의 기쁨을 증언하려고 바로 길을 떠납니다. 이는 주님 부활 이후에 첫 제자들을 서두르게 하였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8).


부활 이야기에서 우리는 종종 ‘깨우다’와 ‘일어나다’라는 두 단어를 봅니다. 주님께서는 이 단어들로, 빛을 향하여 밖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우리의 닫힌 모든 문의 문지방을 넘어서도록 당신의 이끄심에 내맡기라고 우리를 다그치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이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우리도 빨리 일어나고, 부활의 신비로 들어가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길을 따라 그분의 이끄심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라고 요청받습니다”(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2022년 6월 29일). 


주님의 어머니께서는, 자신들을 바라보려고 거울 앞에 서 있거나 ‘관계망’에 얽매인 채로 있기를 거부하는 이들인 약동하는 젊은이들의 모범이십니다. 마리아의 관심은 언제나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파스카의 여인이십니다. 영원한 탈출의 상태로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이신 위대한 타자를 향하여, 그리고 다른 이들, 곧 자기 형제자매들과 당신의 친척 엘리사벳처럼 특히 가장 큰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분입니다. 


…… 서둘러 길을 떠났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성인은 루카 복음 주해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마리아는 서둘러 산악 지방을 향하여 떠났는데, “그 약속에 크게 기뻐하여 자신의 기쁨이 가져다준 열정으로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 충만한 마리아가 높은 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을 향해 갈 수 있었겠습니까? 성령의 은총은 지체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서두른 것은 봉사하려는, 자신의 기쁨을 선포하려는, 성령의 은총에 주저하지 않고 응답하려는 열망의 표징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나이 많은 친척 엘리사벳의 어려움에 이끌렸습니다. 마리아는 지체하거나 무심한 채 있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을 더욱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마리아의 삶에 열정을 불어넣고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마다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어려움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이유들을 나는 곧바로 떠올리는가? 아니면 관심과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가?” 당연히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 가장 가까운 이들의 문제들에서부터, 여러분 공동체의 어려움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에게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이 하고 있는 일은 바다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에 불과합니다.” 성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바다는 물 한 방울이 부족해질 것입니다.” 


구체적이고 긴급한 어려움에 직면하면 우리는 신속하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우리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들을 걱정해 주는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병든 이들이, 감옥에 갇힌 이들이, 난민들이 연민의 눈길을 필요로 하는지, 무관심의 벽을 뛰어넘는 형제자매의 방문을 필요로 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이 지닌 ‘서두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그저 한자리에만 머무르게 되지 않도록, 여러분에게 일어나 가야 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전쟁, 강제 이주, 빈곤, 폭력, 기후 재난 상황의 여파로 많은 이들은 이렇게 자문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 것인가? 왜 나여야만 하는가? 왜 지금인가? 그러나 오히려 삶에서 진정으로 해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286항 참조)


나자렛의 젊은 여인의 서두름은 주님께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아 그것을 반드시 나누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자신들이 체험한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다른 이들이 흘러넘치게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이들의 서두름입니다. 자신의 어려움보다는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우선할 수 있는 이들의 서두름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에 안달복달하는 때에 자주 벌어지는 일처럼 다른 이들의 관심이나 인정을 받으려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젊은이의 모범이십니다. 마리아께서는 모든 ‘관계 맺음’에서 가장 참된 것, 바로 만남, 나눔, 사랑, 봉사에서 비롯되는 것을 찾아 떠나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주님 탄생 예고를 들으셨던 이래로, 당신의 친척을 만나러 처음 길을 떠나셨던 때 이래로, 당신의 자애로운 도움이 필요한 자녀들을 방문하시고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일을 결코 멈추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의 여정에 ‘살고 계시다’면, 그 여정은 우리 형제자매 모두의 마음으로 곧장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예수님의 어머니이시자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다’고 우리에게 증언하는지 모릅니다! 마리아께서 모든 시대에 걸쳐 발현과 특별한 은총으로 사람들을 방문하신 외딴곳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실제로 마리아께서 방문하지 않으신 곳은 이 지상에 단 한 곳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백성들 가운데에서 온유하고 사랑이 넘치는 돌봄으로 활동하십니다. 마리아께서는 백성들의 걱정과 어려움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니다.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성지나 성당이나 경당이 있는 곳 그 어디라도 그분의 많은 자녀가 모여듭니다. 온갖 대중 신심의 표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순례, 축제, 기도, 가정에 성화상을 모시는 일, 신심의 다른 많은 행위는 주님의 어머니 그리고 서로 차례로 한 명씩 방문하는 그분 백성들 사이의 중요한 관계를 보여 주는 구체적인 사례들입니다. 


건강한 서두름은 언제나 우리가 위를 향하고 다른 이들을 향하게 합니다

건강한 서두름은 언제나 우리가 위를 향하고 다른 이들을 향하게 합니다. 반면 건강하지 못한 서두름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살아가게 또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합니다. 헌신하거나 관심 두지 않고 우리가 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쏟아붓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는 그 어떤 참된 인격적 투자도 없이 살고 공부하며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들의 서두름입니다. 대인 관계에서 이러한 서두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곧 가정에서 우리가 다른 이들을 경청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멈추는 일이 결코 없을 때에 그러할 수 있습니다. 친구 관계에서 우리가 친구들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친구들이 시련을 겪어 우리의 시간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즉시 외면해 버릴 때에 그러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조차 서로를 진정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인내를 지닌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 일상의 다른 자리들에서 이와 같은 태도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일이 서둘러 이루어질 때에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 쉽지 않습니다. 그 일은 쓸모없고 맥 빠진 것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잠언의 말씀과 같습니다.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잠언 21,5).


마리아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집에 다다를 때에 경이로운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엘리사벳은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하신 하느님의 기적과 같은 개입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자기 이야기로 시작할 이유가 너무나 많았지만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젊은 친척과 그 태중의 아기를 환대하는 데에 온 마음을 기울이고자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인사를 듣자마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한 경탄과 성령의 충만은 우리가 참된 환대를 보일 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중심에 둘 때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를 자캐오 이야기에서도 봅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자캐오가 있던 곳]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루카 19,5-6).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누구에게서도 결코 받아보지 못한 친밀함과 존중의 느낌, 편견과 반감 없음, 사랑의 눈길을 처음으로 받는 뜻밖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우리와 나누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체험의 기쁨은, 우리가 예수님을 환대하고 그분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느끼며 그분을 더 잘 알고자 서두르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마리아와 예수님을 자신들의 집으로 기꺼이 맞아들였습니다. 이 두 노인들에게서 환대의 의미를 배웁시다! 여러분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여러분 공동체에서 가장 연장자들에게 그들의 삶에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던 것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물어보십시오. 여러분보다 먼저 삶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을 듣는 것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지금이 바로 구체적인 만남을 향하여, 우리 자신과는 다른 이들을 진정 받아들이기 위하여 서둘러 떠나야 하는 때입니다. 젊은 마리아와 나이 든 엘리사벳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세대 간, 사회 계층 간, 민족이나 다른 집단 간의 거리를 좁히고 심지어 전쟁을 끝낼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해체되고 분열된 인류 가족 안에서 새로운 일치의 희망을 언제나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는 젊은이들이 기억을 보존할 수 있을 때에만, 노인들의 이야기와 꿈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때에만 그러합니다. “지난 세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이때에 유럽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2022년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교황 담화).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면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양극화와 극단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3-14).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인류가 마주하는 도전들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에 그 응답을 품고 갑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나이 든 친척에게 가져간 가장 위대한 선물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분명히 마리아의 구체적인 도움은 매우 값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감실이신 동정녀의 태중에 계시는 예수님의 존재와 같은 그러한 크나큰 기쁨과 만족으로 즈카르야의 집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산악 지방의 고을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저 당신의 존재만으로 한마디 말씀도 없이 당신의 첫 번째 ‘산상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 가운데 하느님 자비를 믿는 가난한 이들과 온유한 이들의 참행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을 위한 저의 메시지이자 교회에 맡겨진 위대한 메시지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저마다를 위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당신 구원과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에 계신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의 모범이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이 엄청난 선물을 우리 삶으로 기꺼이 맞아들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과 자애로운 봉사를 깊이 상처 입은 인류에게 전하는 방법을 보여 주십니다.


모두 함께 리스본으로!

마리아께서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들처럼 한 명의 젊은 여성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셨습니다. 이탈리아의 토니노 벨로 주교는 마리아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거룩하신 마리아님, …… 저희는 당신께서 깊은 바다를 항해하도록 미리 정해지셨음을 잘 알고 있나이다. 저희가 당신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해 주십사 청한다면 당신을 붙잡아 두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저희의 무너져 내린 마음의 해안에 가까이 계심을 보면서 저희도 당신처럼 드넓은 자유의 바다로 모험을 떠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우리 시대의 여인이신 마리아」[Maria donna dei nostri giorni], 성 바오로 출판사, 치니셀로 발사모, 2012, 12-13). 


제가 이번 3개년의 첫 번째 담화에서 언급하였듯이, 15세기와 16세기에 많은 선교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젊은이가 특히 예수님 체험을 다른 민족들과 국가들과 함께 나누고자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길을 떠난 것은 바로 포르투갈에서였습니다(2020년 제35차 세계 젊은이의 날 교황 담화 참조). 20세기의 초에 마리아께서는 그 땅을 특별히 방문하기로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파티마에서 회개와 참된 자유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 사랑의 강력하고 찬란한 메시지를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젊은이들의 위대한 대륙 횡단 순례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참하도록 초대합니다. 이 순례는 내년 8월에 리스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로 정점에 이를 것입니다. 또한 저는, 우리가 전 세계의 개별 교회들에서 오는 11월 20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지낼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가 최근에 발표한 문서 「개별 교회의 세계 젊은이의 날 거행을 위한 사목 지침서」(Pastoral Guidelines for the Celebration of World Youth Day in Particular Churches)는 청년 사목에 종사하는 모든 이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세계 젊은이의 날에 여러분이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기쁨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가 끝나고 우리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모두 함께 리스본에서 민족들과 세대들이 형제로서 얼싸안는 기쁨, 화해와 평화로 얼싸안는 기쁨, 새로운 선교적 형제애로 얼싸안는 기쁨을 재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여러분 마음에, 모든 거짓된 경계를 버리고 ‘일어나고자’ 하는 열망과 함께하는 여정의 기쁨을 불붙여 주시기를 빕니다. 지금이 일어날 때입니다! 서둘러 일어납시다! 모든 이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하여, 마리아께서 그러셨듯이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고 갑시다! 여러분 삶의 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앞을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이루실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미루어 두지 마십시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의 꿈을 그리고 여러분이 내딛는 걸음걸음을 강복합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2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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