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주교회의 담화제41회 인권 주일, 제12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11-23 조회수 : 1385

제41회 인권 주일, 제12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루카 6,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41회 인권 주일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인권 주일을 지내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권이 지닌 고유하고 중요한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으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인권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의 단순한 의지나, 국가라는 실재나, 공권력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체에서 그리고 그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간추린 사회 교리』, 153항) 때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인권을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는 많은 사람의 고유한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과 국가를 비롯한 인간 공동체가 인권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성(性), 지역, 종교, 학력, 장애, 재력이나 권력 등의 이유로 주류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차별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배척된 이들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속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 심각하게 직면해 있습니다. “배척된 이들은 더 이상 사회의 최하층이나 주변인이나 힘없는 이들이 아니라, 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착취된’ 이들이 아니라 쫓겨난 이들, ‘버려진’ 사람들입니다”(「복음의 기쁨」, 53항).


우리는 성경에서 배척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루카 6,6-10)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그라든 손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고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회당에서도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 밀려나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엄연히 거기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 함께 있음에도 함께 있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을 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규정에 눈이 멀어 구석에 밀려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를 주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뚫고 나아가 당시 절대적이었던 안식일 규정을 넘어 사람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루카 6,8)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구석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던 사람을 한가운데 세우심으로써 회당의 모든 사람이 그를 볼 수 있게 하셨고, 앞으로 그를 내쫓거나 버리지 말고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고쳐 주심으로써 그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인권 주일을 맞이하여 특히 배척된 사람들, 엄연히 있어도 무관심으로 방치되거나 변두리에 내몰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택배 물건을 받고 기뻐하면서도 택배 노동자의 과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배달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면서도 분초를 다퉈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던 배달 노동자의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은 좀처럼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갓 구워 낸 빵의 향기를 즐기지만, 밀가루 반죽기에 끼어 죽어 간 사람은 그저 남일 뿐입니다. 밤새 내놓은 쓰레기 더미들이 말끔히 치워진 집 주위를 바라보며 상쾌함을 느끼면서도 정작 누가 치웠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늙고 병든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요양 보호사들을 시간당 얼마쯤으로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축제를 즐기러 간 많은 젊은이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변두리에 내몰린, 엄연히 있어도 무관심으로 방치된 이들입니다.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빼앗긴 인권을 회복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국가 공권력과 정치 공동체는 이처럼 배척된 사람이 생기게 된 “사회적 조건들을 바꾸려고 최선을 다해야”(「모든 형제들」, 186항) 합니다. “정치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여론 조사에서의 지지도 하락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배척 현상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모든 형제들」, 188항)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 공동체의 이런 노력과 더불어 우리 각자는, 나부터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뚫어야 하고, 오늘날 절대화되다시피 한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장벽도 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등을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어 우리 곁의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어나 우리 가운데에 서십시오!” 하고 우리의 삶으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내몰린 사람을 ‘바라보고’ 그에게 ‘다가가서’ 그와 ‘함께함으로써’ 그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인권 회복을 위한 우리의 인간애의 발로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안의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아 주는 우리의 신앙 행위입니다.


2022년 12월 4일 대림 제2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 선 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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