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교구장 담화2023년 교구장 사목교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11-27 조회수 : 1647

 

 

2023년 교구장 사목교서

 

신앙선조들의 삶에서 배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교구공동체의 해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백성(시편 144,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코로나 대유행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지치지 않는 희망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신 모든 신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 교회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며 길을 찾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세상 안에서 교회가 나아갈 바른길을 찾고 발견하도록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하고 함께 대화하면서 교회가 당면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합시다. 교회의 쇄신과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며 올 한 해 동안 그리스도교 신앙의 탁월한 모범인 우리 신앙선조들과 순교자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교구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시다.

 

1. 신앙선조들의 자유와 기쁨

우리 신앙선조들과 순교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난 고귀한 신원에 대한 감사와 그분께 끝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으로 언제나 내면의 기쁨과 자유를 잃지 않았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6항 참조). 그들은 시련의 순간에도, 모진 박해와 죽음의 위협에도 신앙인의 자유와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지닌 든든한 희망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결코 허무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충만히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그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과 같은 세상적인 행복의 가치를 그리스도의 복음에 견주어 상대화할 줄 알았습니다(교황 베네딕토 16,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8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고 있음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복음의 요구를 희석시키며 세상의 흐름에 맞춰 살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 강론 참조). 그러나 우리 신앙선조들과 순교자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모든 것 위에 가장 높이 모시고 살면서 그 어떤 세상의 행복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과 바꾸지 않는 지혜와 용기를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의 많은 행복의 조건들, 곧 돈과 편리와 물질적인 안정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참 기쁨과 자유는 세상과는 다른 원천, 곧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바오로 6, 그리스도인의 기쁨, 8항 참조). 그분에게서 오는 이 내면의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2. 신앙선조들의 기도

신앙선조들은 기도하는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만났고, 기도를 통해 얻은 하느님의 위로와 힘으로 세상의 온갖 유혹과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순교자들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늘 기도하였고 죽음의 순간까지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그들은 왜 기도했을까요? 그들이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도를 통해 큰 위안을 받고 기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2코린 7,3-4 참조).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시고 당신을 닮도록 불러주셨습니다(창세 1,26-27 참조). 그래서 모든 사람의 정신과 마음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영혼의 깊숙한 곳에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친교를 나눔으로써 분명 기쁨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요 구원자인 하느님을 내면으로 만나게 될 때 더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가 만나는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더 잘 만날 수 있고, 기도의 생활이 우리의 존재 전체를 떠받쳐 주는 근거가 되면 될수록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기쁨의 선물은 다름 아닌 바로 하느님 자신입니다(루카 11,13 참조).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물 중의 선물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루카 10,42 참조)입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기꺼이 내어주려 하신다는 사실을 더욱 잘 깨닫게 되고 점점 더 하느님을 열망하게 될 것입니다(베네딕토 16, 나자렛 예수 I, 5장 주님의 기도 참조). 이것이 우리 신앙선조들이 언제나 기도했고 우리 역시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라는 시편 저자의 기도처럼, 기도는 하느님 때문에 충족한 삶, 하느님으로 충만히 채워진 복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줍니다.

 

3. 신앙선조들의 형제애

신앙선조들과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을 통해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들은 세례 받은 모든 이가 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저마다의 신분을 잊고 서로 평등하게 사람을 대함으로써 당대의 사회구조에 맞서 형제애가 넘치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천한 신분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황일광 시몬(1757-1802) 순교자는 신분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신앙인들의 모습에 감동하여 천당은 후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도 있음이 분명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듯 신앙선조들의 인간존중과 애덕실천의 모범은 사람을 빈부와 직업, 인종과 지역, 성별과 나이에 따라 구분 지으며 갈등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리 신앙선조들이 보여준 형제애의 모범을 따라 살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서로 도와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하는 산 증인이 되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당신 앞에서 저희는 저희의 모든 조상처럼 이방인이고 거류민입니다. 저희의 나날은 이 땅 위에서 그림자와 같습니다”(1역대 29,15)라는 다윗 임금의 고백처럼, 우리는 지상에서 하늘의 영원한 아버지의 집을 향해 순례하는 이 세상의 이방인이고, 나그네입니다. 우리 민족도 지난 세기 슬픔과 고난의 역사를 겪으며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환난 중에 이주민으로서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 지금 우리 곁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의 눈물과 애환을 보듬어 줌으로써 천국에서 만나 뵙게 될 그리스도의 따뜻한 환대와 위로의 희망을(마태 25,31-46 참조) 키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4. 신앙선조들의 청빈

우리는 해가 갈수록 생태계의 이상 징후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고, 이런 위기의 원인이 우리 각자에게 있음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사람의 생태적 회개를 촉구하시며 인류가 다함께 삶의 양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하셨습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참조). 지금 우리에게 닥친 생태계의 위기는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는(창세 2,15 참조) 주님의 충실한 관리자요 책임자로 거듭 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선택과 일상의 삶이 자연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조금 더 편리하고 조금 더 풍족한 삶을 꿈꾸지만, 사람의 욕망의 총합은 오염되어 돌이키기 어려운 생태의 위기로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2022년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환경의 날 담화문 참조). 우리 신앙선조들이 지녔던 청빈과 복음적 가난의 실천은 우리가 생태환경을 복원하고 피조물을 보호하는 일에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생태의 위기를 부르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면서(루카 12,15 참조) 더 가지고 더 소비하기보다 조금이라도 아끼고 재활용하는 절제의 생활로 하나뿐인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에 앞장서는 신앙인이 되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신앙의 선조들은 삶의 고난과 역경 안에서도 신앙의 기쁨과 하느님 사랑의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후예인 우리도 험난한 파도와 같은 이 세상에서 바다를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굳게 믿으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담대히 걸어 나갑시다.

 

 

20221127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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