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주교위원회의 성명을 환영하며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주교위원회(위원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는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2023년 9월 1일에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성명서”(関東大震災朝鮮人虐殺に関する声明文)를 발표하였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위원장 정신철 주교)는 2023년 9월 4일에 아래와 같이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주교위원회의 성명을 환영하며
“기억이 더욱 공정하고 형제애 넘치는 미래를 보장하고 증진합니다”
(2019년 일본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에서 한 프란치스코 교황 연설 가운데)
1.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오늘날의 세계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을 통하여 “닫힌 세상”(104항), “산발적인 세계 전쟁”(259항)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열린 세상”을 상상하고 이룩하려면 “진실에서 새롭게 시작”(226항)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진실은 보복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로 이끄는 밑거름이고, 용서는 진실에 대한 기억과 함께 걸어갈 때만 얻게 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려면 먼저 진실을 마주하여야 합니다.
2. 이런 의미에서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고 그 참상을 직시하려는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주교위원회의 이번 성명은 참으로 뜻깊은 목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앞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려는 유혹”(249항)에 경종을 울리고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국가적 양심과 인간 존엄의 중요성을 흔들어 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 성명은 인종과 국가, 종교와 신념을 넘어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우리 모두를 ‘형제’로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와 ‘다르다’라는 이유로 벌어진 불행한 ‘어제’가, 이민자와 난민 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로 언제든 ‘오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과거의 수치스러운 잘못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건강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음을 다시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단과 인종에 속한 이들만을 ‘이웃’으로 여겼던 유다 문화의 협소한 담장을 허물고(80항 참조), 모두가 하느님의 ‘경계 없는 사랑’으로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이 성명을 통하여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4. 이미 일본 가톨릭 교회는 과거 이웃 나라를 상대로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여러 차례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사과하였습니다. 이번 성명 또한 일본 가톨릭 교회가 군국주의에 짓눌린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의와 고통에 침묵으로 동참하였음을 통렬히 반성한 전후 최초의 일본 주교단 교서인 『평화를 향한 결의 - 전후 50년에』(平和への決意 - 戦後五十年にあたって, 1995년)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참된 평화로 가는 길임을 용감히 보여 준 일본 가톨릭 교회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한국 천주교회도 일본 가톨릭 교회와 함께 인류를 ‘모든 형제’로 초대하시는 하느님 사업에 동참할 것을 다짐합니다.
2023년 9월 4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정신철 주교
위 원 옥현진 대주교
정순택 대주교
김선태 주교
문창우 주교
유경촌 주교
박현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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