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교황 담화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4-02-05 조회수 : 759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2024년 2월 11일)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관계의 치유를 통한 아픈 이들의 치유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 2,18 참조). 한처음부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친교를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삼위일체의 모습을 반영하는 우리 삶은 관계와 우정과 주고받는 사랑의 연결망을 통하여 충만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바로 이 친교의 계획이 인간의 마음 깊이 뿌리내려 있기에, 우리는 버림받음과 고독에 대한 체험을 무언가 두렵고 고통스럽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이따금 심각한 질병에 걸려 취약하고 불확실하며 불안한 시기에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 시기에 몹시 외로웠던 모든 이를 생각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방문객을 맞이할 수 없었던 환자들뿐만 아니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격리 병동에 갇혀 지낸 많은 간호사, 의사, 지원 인력이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만 가족과 멀리 떨어져 홀로 임종의 시간을 맞아야 했던 모든 사람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또한 전쟁과 그 비참한 결과로 도움도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과 고립감에 함께합니다. 전쟁은 가장 끔찍한 사회 병폐이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희생을 치르게 합니다. 


또한 평화와 더 많은 자원을 누리는 나라에서조차, 노년과 질병의 시기를 외로움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버림받는 상황으로도 경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이 암울한 현실은 주로 개인주의 문화, 곧 온갖 대가를 치르고 얻는 생산성을 찬양하고, 효율성의 신화를 조장하며, 개개인이 더 이상 보조를 맞출 힘이 없을 때에는 무관심해지고 냉혹해지기까지 하는 개인주의 문화의 결과입니다. 그러고 나면 개인주의 문화는 버리는 문화가 됩니다. 버리는 문화에서 “사람은 존경하고 보호할 우선 가치로 더 이상 여겨지지 않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처럼 ‘아직 쓸모없는 존재’, 노인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면 더욱 그러합니다”(「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18항).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의 존엄성과 필요에 중점을 두지 않는 어떤 정치적 결정을 이끌어 냅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은 모든 사람이 건강에 대한 기본권과 의료 혜택의 기회를 누리도록 보장하는 데에 필요한 정책과 자원을 늘 장려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의료 혜택을 단지 의사와 환자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치료의 연대’를 수반하지 않는 서비스 제공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것도 취약한 이들이 버림받고 고립되는 데에 일조합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다시 한번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초기에 이 말씀을 하시어 인류를 위한 당신 계획의 심오한 의미를 우리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서서히 스며들어 의심과 균열과 분열에 이어 결국 고립을 야기하고 마는 죄의 치명적인 상처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죄는 사람과 그의 모든 관계를, 곧 사람이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과, 피조물과 맺는 모든 관계를 공격합니다. 그러한 고립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죄는 사랑의 기쁨을 앗아가고 우리가 삶의 모든 중요한 여정에서 혼자라는 숨 막히는 느낌을 체험하게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질병에 필요한 돌봄의 첫 번째 형태는 함께 아파하고 사랑으로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병자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의 돌봄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느님과, 다른 이들 곧 가족 구성원과 친구와 의료인과, 피조물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맺는 모든 관계를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이 일이 분명히 이루어지게 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표상을 바라봅시다(루카 10,25-37 참조). 걸음을 늦추어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그의 역량을, 고통받고 있는 형제의 상처를 돌보는 그의 온유한 사랑을 살펴봅시다.


삶의 중심이 되는 이 진리를 기억합시다. 이는 누군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기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고 사랑을 위하여 우리가 창조되었으며 친교와 형제애로 부름받았다는 진리입니다. 우리 삶의 이러한 측면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질병에 걸리고 허약할 때 우리를 지탱해 줍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가 다 함께 채택해야 하는 첫 번째 치료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시적이든 만성적이든 질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밀감과 온유함에 대한 여러분의 갈망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이를 숨기지 말고, 여러분이 다른 이들의 짐이 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마십시오. 병자들의 상태는 우리 모두에게, 정신없이 바쁜 삶의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라고 촉구합니다.


급변하는 이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특히 예수님의 연민 가득한 눈길을 닮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외로운 이들, 소외되고 버림받았을 이들을 돌봅시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도 안에서, 특히 성찬례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고독과 고립의 상처를 치유합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개인주의, 무관심, 버리는 문화에 맞서 싸우고 온유와 연민의 문화를 증진하는 데에 힘을 모으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이들, 취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관심과 사목적 염려의 중심에도 그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병자의 치유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 주시고 우리가 친밀감과 형제적 관계의 장인이 되게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립시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1월 10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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