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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담화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4년 제39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4-10-23 조회수 : 61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4년 제39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2024년 11월 24일)

주님께 희망을 둔 이는 지칠 줄 모르고 걸어갑니다

(이사 40,31 참조)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지난해 우리는 “희망 속에 기뻐하십시오.”(로마 12,12)라고 한 바오로 성인의 말을 성찰하며 대희년을 향한 희망의 길을 나섰습니다. 올해 우리는 2025년 희년 순례를 준비하며 이사야 예언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 40,31). 이는 이른바 위로의 책(이사 40-55장)에서 뽑은 말씀입니다. 이 위로의 책은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 생활이 끝나고 하느님 백성에게 희망과 거듭남의 새 시대가 시작됨을 알립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위하여 지금도 열어 주고 계시는 새로운 ‘길’ 덕분에 하느님 백성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이사 40,3 참조).


오늘날 우리 또한, 절망을 불러일으켜 평온한 마음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전쟁의 비극, 사회 불의, 불평등, 기아, 인간과 피조물 착취라는 비참한 상황들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젊은이들이 바로 가장 큰 대가를 치릅니다. 젊은이 여러분은 미래를 불확실하게 느끼고 여러분의 꿈이 어떤 결실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무기력과 우울감에 사로잡혀 희망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위험을 무릅쓰며 파괴적인 행동에 이끌릴 수 있습니다(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 12항 참조). 이러한 까닭에 저는, 바빌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하였듯이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에게도 희망의 메시지가 가닿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여러분 앞에 길을 열어 주시어 그 길을 기쁨과 희망으로 나서도록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1. 인생의 순례와 도전들


이사야 예언자는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걷는 것과 피곤한 것, 이 두 가지 측면에 대하여 이제 성찰해 봅시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순례입니다. 우리 자신을 넘어서도록 우리를 재촉하는 여정, 행복을 찾는 여정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의 구원이시고 모든 선의 충만이신 하느님을 향한 순례입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의 목표와 성취와 성공이 오직 물질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처음의 만족감 뒤에 여전히 공허하고 더 큰 무엇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것들은 우리 영혼을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한 분에게서 창조되었고, 그 결과 초월에 대한 내재적 갈망, 곧 더욱 큰 열망의 충족을 향하여, ‘더욱 많은 것’을 향하여 부단히 나아가려는 지속적인 원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삶을 발코니에서 관망하는 것’으로는 젊은이 여러분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정을 지니고 여정에 나서더라도 머지않아 피곤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압박, 곧 학업과 일과 개인의 삶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압박으로 불안과 내적 피로가 생겨납니다. 이는 일종의 허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수많은 일로 채우지만 충분히 해낼 수 없고 기준에 못 미친다고 느끼게 만드는 공허한 ‘활동주의’ 속에서 우리가 숨 가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피곤은 권태를 수반합니다. 곧, 절대로 길을 나서지 않고 선택하거나 결정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지대에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며, 자기 안에 갇혀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며, 여러 문제와 타인 그리고 삶 그 자체 때문에 ‘자기 손을 더럽히는’ 일이 없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무관심과 불만족을 수반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권태는 우리가 젖은 시멘트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결국 이 시멘트가 굳으면서 우리를 짓누르고 마비시키고 나아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망 없이 가만히 있는 이들의 권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피곤이 더 좋습니다!


역설적으로, 피곤에 대한 해결책은 가만히 서서 쉬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책은 길을 나서고 희망의 순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희망 안에서 걸어가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을 향한 저의 초대입니다. 희망은 모든 피곤과 위기와 걱정을 이겨 냅니다. 희망은 하느님께서 직접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의미로 채워 주시고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시며 그 궁극적인 방향과 목적을 보여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승리의 상을 받기 위하여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선수의 표상을 활용합니다(1코린 9,24 참조). 여러분 가운데 관중이 아니라 선수로 운동 경기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 이들은 결승선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내적 힘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희망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불어 넣으시는 새로운 힘이고, 우리가 경기에서 꾸준히 달릴 수 있게 하며, 현재의 역경들 너머를 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와 영원한 생명의 충만함이라는 목표로 줄달음치게 합니다. 만약 아름다운 목표가 있고, 삶이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며 내가 꿈꾸고 계획하며 성취하는 그 어떤 일도 결코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면, 그 길을 계속 걸어나가며 온 힘을 다하여 장애물과 피곤을 이겨 내려 노력할 가치가 있습니다. 궁극적인 상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광야의 순례자들


인생의 순례길에서는 필연적으로 어려움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오랜 순례 여정을 걸어가려면 변화하는 계절과 기후에 적응하고 쾌적한 초원과 시원한 숲뿐만 아니라 눈 덮인 산과 메마른 사막도 건너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를 지나서 약속된 땅으로 가는 여정이 그러했듯이, 믿는 이들도 인생의 순례와 궁극적 목적을 향한 여정에서 피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선물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광야를 체험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공부와 일에서, 혼인 생활이나 사제나 수도자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서 우리가 처음에 품었던 열정에는 삶을 광야의 힘든 여정처럼 보이게 만드는 위기의 순간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때는 허비되거나 무익한 시간이 아닙니다. 이러한 때는 중요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희망이 정화되는 순간들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많은 거짓된 ‘희망’, 곧 우리 마음에 너무 작은 희망들이 사라지고 그 정체가 드러나며 우리는 환상 없이 홀로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기초가 되는 희망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이 참된 희망들인가 아니면 그저 신기루일 뿐인가?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곁에 아버지처럼 다가오시어 우리 여정에 새 힘이 되는 빵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주님께서 광야에 있는 이들에게 만나를 주셨고(탈출 16장 참조), 지치고 낙심한 엘리야 예언자에게 두 번이나 빵과 물을 주시어 그가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하셨던 것을(1열왕 19,3-8 참조) 기억합시다. 이러한 성경 이야기에서 교회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에서 우리를 지탱하시려고 내려 주시는 참된 만나, 참된 양식인 성체성사라는 귀중한 선물의 예표를 신앙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가 이야기하였듯이, 성체성사는 하늘 나라로 가는 비단길입니다. 복자는 성체성사를 날마다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이루는 일치 안에서 우리는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마태 28,20 참조). 저는 이 위대한 성체성사의 선물을 재발견하도록 여러분 모두를 격려합니다!


세상 순례 중에 피할 수 없는 피로의 순간들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예수님 안에서 쉬는 법을 배웁시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수행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6,31 참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휴식을 취하고 여가 시간을 가지며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운동하고 잠자는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의 휴식인 영혼의 휴식이 있습니다. 많은 이가 이를 추구하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기에 일부만이 발견하는 휴식입니다.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은 모든 내적 피곤함으로부터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여정의 피곤함이 여러분을 무겁게 짓누를 때, 예수님께 돌아와 그분 안에서 쉬고 그분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십시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르기”(이사 40,31) 때문입니다.



3. 관광객에서 순례자로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사랑의 길을 따라 인생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에 나서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조언을 드립니다.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참된 순례자로 길을 나서십시오. 셀카를 찍으려고 몇몇 찰나의 순간에만 관심을 둘 뿐,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못 보는 피상적인 구경꾼처럼 되지 마십시오. 관광객들은 그렇게 합니다. 반면에 순례자들은 자신이 자리하는 곳에 온전히 몰입하고, 그 장소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행복과 충만을 추구하는 데에 도움을 받습니다. 희년 순례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도록 우리 모두가 부름받은 내적 여정의 외적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태도로 희년을 준비합시다. 많은 젊은이 여러분이 성문 통과를 위하여 로마로 순례하러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경우든,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신심이 보존되는 성당과 성지들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모든 이가 자신의 지역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순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희년 순례가 우리 각자에게 “우리 구원의 ‘문’이신 주 예수님과 참되고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때”(「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1항)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 가지 기본 자세로 이를 경험하도록 권장합니다. 첫 번째는 감사입니다. 하느님께 받은 많은 은총, 특히 생명의 은총에 대하여 찬미하려는 열린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그다음은 간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채워지지 않는 갈망의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참회입니다. 이는 우리가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가 때때로 잘못 들어선 길들과 잘못 내린 결정들을 인정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주님과 그분 복음의 빛을 향하여 회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4. 사명을 위한 희망의 순례자들


저는 젊은이 여러분의 여정을 인도하는 더욱 효과적인 표상 하나를 전합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하는 이들은 유명한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세운 주랑(柱廊)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광장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주랑 전체는 양팔을 활짝 벌린 모양입니다. 이는 모든 자녀를 감싸 안는 우리 어머니인 교회의 표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희년 전통에서 그러하듯, 다가오는 희망의 성년에 여러분 모두가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을 경험하고, 우리의 모든 ‘내면의 빚’을 탕감해 주시는 하느님의 용서를 경험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품에 안겨 그분 안에 거듭난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환대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많은 친구와 동료를 양팔 벌려 껴안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미소, 우정의 작은 몸짓, 친절한 눈길, 기꺼이 귀 기울이는 경청, 선행을 베풀며 예수님의 영 안에서 이러한 행동들이 전해지는 이들에게 희망의 풍성한 씨앗”(「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18항)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지칠 줄 모르는 기쁨의 선교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이 여정을 걸어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제 다음과 같이 증언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성인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티모 4,7-8). 수많은 성인 성녀의 모범이 우리를 이끌고 북돋워 줍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 모두는 제 마음속에 특별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희망과 사랑의 순례자로 꾸준히 걸어가면서 인내와 확신으로 모든 희망의 성취를 기다릴 수 있도록, 여러분의 여정을 동정 마리아께 맡겨 드립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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