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 담화2022년 부활 담화문
2022년 부활 담화문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1.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축하드리며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부활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풀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궁극의 문제는 죽음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희망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 무척 당황했다고 했습니다(부활 밤 미사 복음, 루카 24,4 참조). 성경의 원문은 여인들의 이 놀라움과 당혹감을 “출구가 없다”(‘문이 없음’, 아포리아)고 표현했습니다. 여인들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는데, 자신들 앞에 벌어진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문,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시면 불가능한 새로운 길입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충만하고 완전한 구원의 실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희망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마침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이것이 해마다 온 교회의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구원의 공동체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그분의 부활을 경축하고 감사드리는 이유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의 운명은 죽음으로 끝나고 무덤에서 멈추었지만, 이런 어둠과 절망의 역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종결되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합체된 모든 신자는 썩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주님의 생명으로 변화될 희망을 안고 자신의 부활을 기다리며 이 세상을 순례하게 되었습니다(1코린 15,52-54 참조).
3. 세례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세례 받기 전과 세례 받은 후의 우리 인생도 완전히 다릅니다. 초대교회는 부활절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예식 가운데 하나로서 믿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부활절은 일 년에 한 번 가장 귀한 세례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교회는 해마다 부활절을 지내며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과 세례성사는 서로 떼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례 성사를 통해 세례를 받는 모든 이가 예수님의 죽음에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다가 함께 부활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27항; 로마 6,3-4 참조). 이처럼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갑니다. 우리는 세례 때 물에 세 번 잠김으로써 미리 죽음을 맛보지만 이는 죄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물에서 다시 나올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39항, 1262항 참조). 초대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에게 부활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히고 아기처럼 우유와 꿀을 먹였습니다. 오늘도 해마다 부활성야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은 그들이 이전에 받은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합니다. 마귀와 그 행실을 모두 끊어버리고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며 살겠다는 세례 때의 서약을 다시 새롭게 함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죽고 묻혀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다시 확인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54항 참조). 이처럼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부활에 대한 희망과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4. 그러면 세례 받은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부활 신앙은 먼 미래에 있을 부활, 나의 죽음 이후에 있는 부활을 생각하고 그날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지금 이 순간부터 바로 이 자리에서 새로운 존재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매일매일 거듭 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집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걷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부활 낮 미사 제2독서, 콜로 3,1-3). 우리도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저 위에 있는 것”(3,1)을 추구해야 합니다.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실천해야 합니다. 세례로 시작된 우리의 삶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는 사랑과 희생의 삶이 될 때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부활에 대한 희망도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살피고 성찰하면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겸손하게 주님의 길을 따라 살도록 노력합시다. 가진 것이 없는 이와 불쌍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을 찾아가 돌봄으로써 가난하고 미소한 형제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합시다(마태 25,31-46 참조).
특별히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수많은 난민들과 희생자들이 생겨나고, 무고한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인류 가족의 미래를 맡겨드리고 전쟁과 폭력이 종식되어 고통이 멈춰지기를 하느님 아버지께 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십시오. 또한 크나큰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일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5.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지난 성 요셉 대축일에 저희 교구 사제 김 종강 시몬 신부님이 저희 교구 제 4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셨습니다. 새로운 교구장님과 함께,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희망으로, 형제애로 가득한 공동체를 이루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를 지역 사회에 널리 전하는 활력 넘치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2022년 4월 17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장 봉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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