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담화2022년 노동절 담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2022년 노동절 담화
젊은이야, 일어나라(루카 7,14 참조)
1977년, 우리나라가 수출 실적 100억 달러를 달성하여 중진국 상위권 진입을 자축하던 무렵,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당시 들떠 있던 한국 사회에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경제 이익이 국민의 0.3%에게 쏠려 있는 이 상황은 과연 공정한가? 장시간 노동-저임금 산업 구조와 노동 탄압 정책으로 이룬 경제 성장은 정의로운가? 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주역인 “청소년 노동자들의 피땀”에 대한 사회적 외면은 과연 올바른가?(정의평화위원회, 1978년 성명 ‘노동 정의를 실현하라’ 참조)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이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으며 노동 조건과 노동자의 권리 또한 어느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봉사해야 할 ‘경제의 도덕적 차원’(『간추린 사회 교리』, 330-335항 참조)은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노동자의 존엄성과 안전은 다양하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위협받습니다. 이윤 축적을 위한 자본의 탐욕과 비인간성은 여전히 건재하고,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 여기에는 청소년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상의 아픔과 치유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산업 재해 추방 운동도 1988년 열다섯 살 노동자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청소년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항만과 바다 등에서 과로와 스트레스, 질병과 사고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어 갑니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기업이 수익에만 관심을 둔 나머지 비용 절감과 ‘부리기 쉬운 노동력’에 집착하는 사이에, 교육계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취업률과 지원금을 우선시하는 사이에, 정부가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그리고 노동자들 간의 욕설과 폭행 그리고 강요 행위가 방치되는 사이에 청소년들은 하나둘씩 죽어 가고, 서서히 그들의 가정도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소년 노동 문제의 배경으로 그동안 인간 탐욕이 만든 고질적 폐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노동의 도구화, 장시간-저임금 노동, 고압적인 관리‧감독 체계, 중대 재해 처벌법의 제정에도 계속되는 산업 재해, 직장 내 괴롭힘과 강요, 온정적 처벌과 무관심, 정부의 안이한 근로 감독, 자본에 유리한 법 적용 그리고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노동 문화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당하는 ‘나이 문화’를 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노동 조건과 제도 그리고 문화 등으로 말미암아, 청소년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는커녕 슬프게도 자본과 노동의 노예와 희생물이 됩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은 성경에 나오는 한 젊은이의 장례 행렬(루카 7,11-17 참조)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그 어머니와 고을 사람들은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행렬을 마주하셨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그에게 손을 내미시고, ‘젊은이야, 일어나라.’(루카 7,14 참조)는 말씀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시며, 마침내 그에게 생명과 꿈을 돌려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불의한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이 자신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인간적인 노동 현장’(「백주년」, 43항 참조)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청소년은 전인적 발전이 방해받지 않는 노동 조건에서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지상의 평화」, 18-19항 참조). 그리고 청소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해당 청소년 개인은 물론 우리 세상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젊은이가 넘어질 때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온 인류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젊은이가 일어나면 이는 마치 온 세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도 사실입니다”(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그렇습니다. 청소년이 일어서야 우리 세상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사회의 정의로움은 약자들 가운데 가장 약자, 곧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노동자인 청소년 노동자’(마태 25,40 참조)의 보호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청소년이 더 이상 어른의 탐욕으로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그리하여 육체적, 정신적, 지적 그리고 경험적 상황에 걸맞게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사회가 절실히 요구됩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296항 참조). 이를 위하여 이제 정부와 교육계, 기업과 사회 전체 어른들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청소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청소년이 자신과 인류의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청소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법과 제도 마련과 실행 그리고 현재의 노동 현실과 문화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 또한 인간의 탐욕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공동선을 위한 정책을 통하여 청소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를 바랍니다.
2022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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