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담화202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202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마음을 모아”(마태 18,19) 평화의 길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억하는 6월, 가슴 아픈 현실을 돌아보며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이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억을 안고 통일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서성거리는 우리에게 화해와 용서를 위한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남과 북은 지리적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위치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매우 멀게 느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갈라진 동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이 시대 새로운 독립운동입니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제2의 독립운동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렇듯 남북의 벽을 허물고 하나 되는 일은 고통과 두려움을 감내하고 담대한 용기로 실천하며 행동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요와 전쟁, 적대와 분열의 상황이 심화되고 있지만, 교회는 이 땅의 평화와 화합, 그리고 일치를 위한 사명을 외면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전쟁의 참상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하느님 이름으로 (······) 학살을 멈추십시오!”라고 외치시며, “다양한 지역 전쟁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국민의 운명을 다스리는 이들이 20세기 비극의 교훈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라고 쓰라린 마음을 토로하셨습니다. 예기치 않게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를 갈망하는 온 인류에게 크나큰 상실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내몰린 군인들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희생당한 무고한 하느님 백성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전쟁의 참상은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합니다.
전쟁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생존마저 위협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 사회의 약자들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 노인들,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는 선의를 가진 모든 이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전쟁을 강력히 반대하는 교회는 “인간의 생명을 일부러 파괴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교회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오랜 전쟁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도록 모든 이가 기도하고 행동할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라고 가르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7항). 이에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남북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위하여 온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군비 경쟁의 실상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와 같은 대재앙을 겪으면서도 여러 국가는 자국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살상과 파괴를 위한 무기를 더 많이 만들거나 사들여 비축하고 있습니다. 최근 스톡홀름 국제 평화 문제 연구소(SIPRI)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지출된 군사비가 역대 최고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유럽 각국의 군비 경쟁에 새로운 불을 지폈고, 북핵 문제와,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갈등도 이 지역 각국의 군비를 크게 증가시킨 요인입니다. 이처럼 군비 경쟁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가운데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전쟁을 예방할 수 없는 군비 경쟁의 악순환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핵 문제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근래에 와서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진 각국의 국방비 증액도 이 지역의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군비 경쟁은 가난한 약자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인류의 극심한 역병”이라고 표현한 교회의 가르침을 되새겨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지난 세기 냉전과 군사적 대립 속에서 “군비 경쟁이 계속된다면 그 수단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가공할 온갖 재앙을 언젠가는 일으키고 말리라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여야 한다.”라고 경고하였습니다(사목 헌장, 81항).
하느님을 신뢰하는 평화
전 세계가 안보의 불안을 호소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요원해지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하는 대륙 간 탄도 유도탄(ICBM) 시험 발사까지 재개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계속해서 그 수위를 높여 간다면 미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세계정세 속에서 새로 출범한 우리 정부 신뢰를 토대로 한 대북 정책을 기조로 남북이 소통하고 통일을 향한 평화의 발걸음을 다시 내딛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군사력 강화가 결코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듯이 남북한 정부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안보는 군사적인 대결로 구축되지 않습니다. 평화는 대화와 소통으로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교회가 추구하는 적극적인 평화입니다.
“그러나 유다 집안은 가엾이 여기고 주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을 구해 주리라. 그렇다고 활이나 칼이나 전쟁 군마나 기병들로 그들을 구해 주지는 않으리라”(호세 1,7).
그리스도의 평화를 따르는 신앙인들은 첨단 무기와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인간의 폭력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평화를 믿고 이를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교회는 ‘힘의 균형’을 넘어서는 진정한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그리스도의 평화가 바로 우리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위한 새로운 희망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즈카 9,10).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실현은 바로 오늘 이 땅에 사는 우리의 몫입니다. 민족과 국가들이 서로 반목하는 세상에서 같은 말을 쓰는 한 형제인 우리 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하나가 된다면 분열을 극복하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모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신 사랑과 용서와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 냅시다. 이 순간 불행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약하고 가난한 이들,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입은 모든 이가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전구로 인류와 한반도가 평화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2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 주 영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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