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주교회의 담화제27회 농민 주일 담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6-23 조회수 : 1391

제27회 농민 주일 담화

“적은 것이 많은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222항)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지난해 5월 24일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정식으로 선포하였습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된 이래, 교회 공동체의 생태적 회개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졌고, 가톨릭 교회는 2021년부터 7년 여정으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를 위하여 구체적인 생태 환경 운동에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각 교구와 본당, 단체, 개인이 탄소 중립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27회 농민 주일을 맞아 특히 농업과 관련하여 교회가 탄소 중립을 향한 발걸음에 어떠한 실천으로 부합해야 하는지 살피며, 더 올바른 방향으로 힘 있게 매진해야 합니다. 


농촌 사회의 희망인 소농 정책 

우리 농촌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였습니다. 고령화된 어르신들만 지키고 계신 농촌은 농사지을 사람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말해 줍니다. 기계화된 기업형 농업, 화석 연료를 태우는 대형 하우스와 스마트 팜(Smart Farm), 대규모 축사의 육류 가공 등 소수의 인력으로 대량 생산을 이끌어 내는 자본주의적 농업 방식이 우리 농촌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농업 방식은,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화석 연료나 농약, 비료 등의 사용량이 급증하여 탄소 중립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칩니다. 더욱이 농업 구조는 소수의 고소득 기업농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농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소농들도 중요시하는 세심한 정책들이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소농들이 살아야 식량 주권(쌀을 제외한 식량 자급률 5% 이하), 탄소 중립이라는 커다란 가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 또한 농촌이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게 하여 설자리를 잃어 가는 소농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농촌과 도시의 상생 관계가 더욱 간절한 시기입니다.

      

불편함 속에서 발견되는 탄소 중립

오늘날 우리의 삶을 떠올려 봅시다. 대형 마트에서 커다란 수레에 한꺼번에 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를 가득 채우곤 합니다. 택배와 배달 음식 등을 손쉽게 이용합니다. 저렴한 먹거리를 찾다 보면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을 이용하여 만든 식품이라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고릅니다.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 절약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 양식 자체가 윤택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지만, 지금 우리는 일상을 돌아보며 습관적인 소비의 삶에서 벗어나는 ‘생태적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버리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일상의 불편함을 선택함으로써, 대량 소비와 편리함에 집착하지 않고 우리에게 참다운 삶의 기쁨을 주며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생태 영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우리농)의 첫 마음으로

주교회의는 1994년 춘계 정기 총회를 통하여 교회가 우리 농민과 농토와 농업을 살리는 일을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그 가운데 하나로 교구별로 본당에 우리 농산물 나눔터를 설치하는 데 협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농이 각종 화학 농약과 비료 등으로 점철된 관행 농업에서 벗어나 땅과 물을 살려 창조 질서를 보전하고 생태 환경을 생각하는 생명 농업을 시도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신앙적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농업이었습니다. 이러한 지향으로 199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교구에 우리농 본부가 설치되었습니다. 가톨릭 농민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농민들이 조직되었고, 도시 본당을 중심으로 우리농 나눔터가 설치되어 정직하고 건강한 우리농 농산물을 신자들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농의 농법은 관행적인 농법보다 훨씬 많은 땀과 노고가 수반됩니다. 이 길은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하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 길을 걷는 시간은 그 신앙적 가치를 신자들에게 알리며 농산물 나눔에 대한 열정도 충만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지금까지 25년여 시간 동안 참으로 의미 있는 길을 힘차게 걸어왔음에 자긍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날 우리 교회가 전반적으로 우리농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때로는 우리농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탄소 중립을 위하여 우리농이 추구하였던 방향을 되새기고 새롭게 정진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삶 전체를 생태적 기준으로 바라보고 작은 것이라도 함께 연대하여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대로 작은 실천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경외를 일깨우고 지속 가능성을 이룩하려는 확고한 결심을 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삶의 흥겨운 축제를 위하여 노력한 때로 기억되도록 합시다”(「찬미받으소서」, 207항).



2022년 7월 17일 제27회 농민 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 현 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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