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마르코복음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19)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11-27
조회수 : 755
마르코복음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19)
지은이: 스티븐 P. 아헌 크롤
옮긴이: 염철호 신부
출판사: 성서와함께
출간: 2023-10-28
페이지: 240
제본형태: 반양장
판형: 15.2*22.5cm
ISBN-13: 9788976354211
‘하느님의 말씀’을 ‘온 세상 땅끝까지’ 충실히 전해 온 ‘성서와함께’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의 두 번째 권, 《마르코복음서》가 독자 여러분과 만납니다!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는 2022년 출간된 The Jerome Bible Commentar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 Third Fully Revised Edition의 한국어판으로, 총 33권(성경 입문 3권, 구약성경 14권, 신약성경 11권, 주제별 논문 5권)으로 나누어 출간됩니다.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는
첫째, 가톨릭교회의 성서학자들이 교회의 성경 해석 전통을 존중하며 쓴 책입니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성경 73권 전체의 주해와 관련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았습니다.
셋째, 성경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교회 구성원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되었습니다.
넷째, 성경 각 권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성서학의 최근 연구 결과가 반영된 최신판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입니다.
그 두 번째 책인 《마르코복음서》는 스티븐 P. 아헌 크롤이 쓰고, 염철호 신부가 번역하였습니다.
아헌 크롤은 책 서두에서 자신이 ‘내러티브narrative 분석’ 방법을 활용한다고 밝힙니다. 내러티브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혹은 ‘서술, 서사’를 의미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 가는 구조, 방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이고, 요나서, 다니엘서 등 ‘예언서’에서도 이 형식을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와서 성경 본문에 신新문학비평이 적용되면서, 마르코복음서 역시 줄거리, 등장인물 변화, 어조, 문체, 설정 등 잘 짜인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받았고, 정교한 내러티브 분석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아헌 크롤이 활용하는 내러티브 분석은 기존의 대세였던 역사비평이라는 통시적 연구와 구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시적 연구와는 달리, 화자가 어떤 전략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며, 독자가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르코복음서에 제시되는 모든 정보는 실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저자가 독자와 상호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가는 이야기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이며, 독자도 그 이야기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저자는 마르코복음서가 놓인 고대 문학적 문맥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 또한 인정합니다. 하지만, 마르코복음서는 정교한 고대 이야기 중의 하나로, 당대의 많은 문학 양식을 활용하고 있으며 청중(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에게 수많은 해석을 허용하는 다의적多義的인 이야기라는 것, 곧 내러티브 분석을 활용함으로써 마르코의 이야기 세계는 새롭고 다채로운 방향으로 열리게 된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일례로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주제를 들 수 있습니다. 대개의 학자들은 세례 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 계시된 이후 예수의 신원이 계속 비밀에 감추어져 있다가, 십자가 사건을 계기로 하느님의 아들임이 계시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헌 크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이 십자가 사건으로 온전히 드러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메시아의 비밀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사실 예수의 신원을 계시하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예수가 임금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십자가 사건은 예수가 완전히 다른 의미의 임금임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러티브 분석을 통한 복음서 주해가 처음에는 독자 여러분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책장을 넘기며 이 새로운 마르코복음서 해설을 만난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출간을 적극적으로 반긴 프란치스코 교황은 친히 쓴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책입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흩어짐과 분열에서 떠나 일치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신자들을 하나로 묶고 한 백성으로 만듭니다. …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동기는, 복음을 사랑으로 관상하고 조금씩 찬찬히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복음을 가까이할 때, 우리는 복음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복음을 읽을 때마다 거듭 매료됩니다.”
‘성서와함께’의 희년을 맞아 한국 교회에 내놓는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바르게 알아듣고 마음에 새겨,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책 속으로
16,8은 마르코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결문이다. 그리스 어법에서는 다소 보기 힘든 결문 구조(접속사 ‘가르gar’로 끝남)를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16,8이 본래의 결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마르코의 이야기는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나고 만다. 예수 부활을 전해 들은 여자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고 아무에게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조차 말을 하지 않는 상태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 명백하다. 만약 그렇게 끝나 버렸다면 부활 이후의 활동은 결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르코가 의도적으로 이런 식의 이야기 결말을 구성했다면, 이 문제를 직접 푸는 일에 청중이 반드시 관여해야 한다. 만약 여자들이 말하지 않는다면 청중 말고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_38-39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표현은 이 책이 아마도 복음서라는 고대 문학의 새로운 장르임을 알려 주는 첫 번째 표지일 것이다. ‘에우앙겔리온Euangelion’(복음, 좋은 소식)이라는 말이 결코 새로운 단어는 아니지만, 바오로의 서간 이전에 나온 문학작품에서는 단 한 번 단수 형태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마르코는 ‘복음’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남겨 두고 있다. 이야기의 복잡함이 조각조각 쌓이면서 이미지, 줄거리, 성격 묘사, 그리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는 암시들로 짜인 하나의 태피스트리tapestry를 이룬다.
_57쪽
15절은 마르코가 복음 혹은 기쁜 소식의 내용을 가장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왕국의 현존에 대한 기쁜 소식을 믿는 것(글자 그대로 표현하자면 ‘신뢰하는 것’)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 회개하는 것이 마르코에게는 핵심적인 요소다. … 마르코에게 하느님 행위에 관한 약속들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며, 하느님의 통치는 현존하는 것이었다. 이는 페플레로타이peplēōai와 엥기켄ēgiken이라는 완료 시제 동사에서 잘 드러난다. 완료 시제는 과거에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거나 현재 존재하는 상태를 표시할 때 사용된다. 그래서 ‘이전에 이미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완성된 상태로 머물러 있음’ 또는 ‘완성되어 있음’ 그리고 ‘가까이 왔고 지금 가까이에 머물러 있음’ 또는 ‘가까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_67쪽
성서학계는 오랫동안 침묵하라는 명령을 역사적 또는 심리학적 모티브로 설명해 왔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이를 바로잡아 이 부분을 일종의 문학적 모티브나 주제, 혹은 도구로 여긴다. 마르코는 이미 1,1과 세례 때(1,11), 그리고 광야의 유혹 사화에서(1,12-13)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많은 이가 주장한 것처럼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주제를 통해 예수의 신원이 계시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논지는 아닌 듯 보인다. 마르코가 사용하는 이러한 내러티브적 수사修辭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라고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정의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_70-71쪽
비유와 비유에 대한 설명 사이에(‘샌드위치 구조’) 제자들이 비유에 대해 예수에게 개인적으로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4,11-12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질문에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제자들에게는 주어졌지만(기쁜 소식) 바깥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비유로만 다가간다(기쁜 소식이 아님). 왜 바깥 사람들이 비유로만 받아들이는지(4,12에 나오는 그리스어 접속사 히나hina는 대개 ‘~하기 위해’라는 목적을 의미하지만 종종 결과를 가리킬 수도 있다)에 대한 설명은 이사 6,9-10을 떠올려 주며 청중에게 하나의 역설을 자아낸다. 예수가 비유를 드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감추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신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까?
_89쪽
8,31은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수난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데, 이는 8-10장에 네 번에 걸쳐 나오는 수난 예고들 가운데 첫 번째 예고다. 네 번의 수난 예고 가운데 세 번의 예고는 유사한 형태와 내용을 담고 있다(8,31; 9,31; 10,33-34). 이 단락의 나머지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위해 시작되는 이 부분은, 고통과 힘을 내러티브적으로 병렬한다. 이는 강력한 임금이라는 개념들과 수난과 죽음을 서로 묶어 메시아/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새로운 한 가지 정의를 제공해 준다. 힘과 수난이 결합된 채 쌓이고 쌓여 십자가 위에서 그 절정에 이르고(15,39), 빈 무덤에서 더욱 강화된다(16,6).
_141쪽
마르코는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를 사람의 아들과 계속 연결함으로써, 청중이 메시아로서의 예수와 사람의 아들의 오심이라는 주제를 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14,62에서 예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 가장 낮은 지위에 서게 되는 ― 변호자도 없이 투옥되어 목숨이 달린 재판을 받는 ― 바로 그 순간, 자신과 관련하여 가장 높은 지위 ―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 영광 받는 사람의 아들 ― 를 주장한다. 예수의 권능과 수난을 병렬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창조적 긴장이 정점에 이른다.
_212-213쪽
16,8의 마지막 문장은 마르코복음서를 문자적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문자적으로 16,8의 내용이 옳다면 예수의 부활 소식은 결코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는 해당 이야기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청중이 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첫 시작으로 돌아가서 두려움과 오해로 해당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멋진 결말은 예수와 제자들의 계속되는 이야기 속으로 청중을 끌어들이면서, 그들(우리)로 하여금 갈릴래아로 돌아가 모든 것을 시작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다.
_232-233쪽
목차
서문
여는 말
추천의 말
한국어판 여는 말
일러두기 | 약어
마르코복음서 입문
내러티브 구조와 주요 관심사들
장르와 문학적 영향
성경의 활용
마르코의 묵시적 종말론
저자, 저술 시기와 장소
마르코 시대의 갈릴래아와 유다
구조
마르코복음서 주해
복음의 시작 1,1–8
하느님의 힘 있는 아들 1,9–45
아들의 세례와 유혹 1,9–13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다 1,14–15
예수가 첫 제자들을 부르다 1,16–20
예수의 첫 기적, 카파르나움 회당의 더러운 영 1,21–28
예수가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다 1,29–31
예수의 활동 요약 1,32–34
예수가 기도한 뒤 활동 범위를 넓히다 1,35–39
예수가 나병 환자를 고치다 1,40–45
권위자들과의 충돌 2,1–3,6
예수가 중풍 병자를 고치다 2,1–12
부르심, 세리들과 죄인들과의 식사 2,13–17
단식 논쟁 2,18–22
안식일에 대한 권한 2,23–28
손이 오그라든 사람 3,1–6
갈릴래아 호수 근방과 호숫가의 예수 3,7–7,23
호숫가의 인파 3,7–12
예수가 열두 제자를 뽑다 3,13–19
예수가 자신의 가족을 다시 정의하다 3,20–35
예수가 비유로 가르치다 4,1–34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비유로 말씀한 이유 4,1–20
비유를 통한 세 가지 진술 4,21–25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 그리고 결론 4,26–3
풍랑을 가라앉힘 4,35–41
더러운 영이 들린 게라사 사람 5,1–20
간절한 아버지와 간절한 여자 5,21–43
예수가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다 6,1–6ㄱ
참된 임금인 예수 6,6ㄴ–52
열두 제자의 파견 6,6ㄴ–13
“임금” 헤로데 6,14–29
열두 제자의 귀환과 오천 명을 먹임 6,30–44
물 위를 걷다 6,45–52
겐네사렛에서의 치유 6,53–56
정결례 논쟁 7,1–23
이방인 지역으로 물러남 7,24–8,10
그리스-시리아 페니키아 여자 7,24–30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다 7,31–37
사천 명을 먹이다 8,1–10
바리사이들이 예수를 시험하다 8,11–13
누룩을 조심하라 8,14–21
예루살렘을 향한 길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 8,22–10,52
눈먼 이를 두 번에 걸쳐 고치다 8,22–26
베드로의 불분명한 이해와 예수의 교정 8,27–9,1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다 9,2–13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다 9,14–29
두 번째(또는 세 번째) 수난 예고 9,30–32
가장 큰 사람에 대한 논의 9,33–41
죄에 대한 논의 9,42–50
이혼 문제 10,1–12
어린이들을 받아들이다 10,13–16
어떤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찾고, 예수는 부자들에 대해 가르치다 10,17–31
세 번째(또는 네 번째) 수난 예고 10,32–34
예수가 자신을 모범으로 제시한 의도 10,35–45
눈먼 바르티매오 10,46–52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11,1–13,37
예수가 성전을 드나들다 11,1–26
예수가 성전에 들어가다 11,1–11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다 11,12–14
성전에서의 예수의 활동 11,15–19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 11,20–26
예수가 성전에서 도전받으며 가르치다 11,27–12,44
예수의 권위 11,27–33
악한 포도밭 소작인들 12,1–12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 12,13–17
부활에 대하여 사두가이들과 논쟁하다 12,18–27
가장 큰 계명 12,28–34
다윗의 자손 12,35–37
예수가 율법학자들을 고발하다 12,38–40
과부의 헌금 12,41–44
성전과 마지막 때 13,1–37
성전 파괴 예고 13,1–8
재난과 구원 13,9–13
가장 큰 재난 13,14–23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 13,24–27
무화과나무의 교훈 13,28–31
깨어 있어라 13,32–37
수난과 부활 14,1–16,8
예수를 죽일 음모 14,1–2
어떤 여자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14,3–9
배신자 유다 14,10–11
제자들과의 파스카 만찬 14,12–26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예고 14,27–31
겟세마니 14,32–52
신문들과 선고 14,53–15,20
예루살렘 의회의 신문과 선고 14,53–65
신문을 받는 베드로 14,66–72
빌라도 앞에서의 신문, 선고, 그리고 모욕 15,1–20
십자가형 15,21–32
예수의 죽음 15,33–41
예수의 묻힘 15,42–47
빈 무덤 16,1–8
후대의 결문들 16,9–20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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