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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그 길을 따라 걷다’ 성지순례 체험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소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10-21 조회수 : 1476


선교사목국은 2021년 최양업 토마스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2021년 1월 1일-2022년 6월 30일까지

순례 안내서 「땀의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그길을 따라 걷다’」를 활용한 성지순례와 함께

체험수기 공모전을 실시했습니다. 

대상을 수상한 임충자 가밀라 님(내수 본당)의 수기를 소개합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순례를 마치며


내수본당 임충자 가밀라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님께서 배티성지에 계실 때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라’고 하셔서 매일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양업순례단을 만나서 차기진 박사님을 통해 최양업 신부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최양업 신부님의 삶과 신앙 안에서 봉헌하는 묵주기도’ 20단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치게 되었습니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마지막 기도도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하는 묵주기도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순례 책자를 사위가 가져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 성모상 앞에 놓인 책자만 바라보며 순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성모 어머니께 조르며 기도했습니다.


‘엄마, 내일 순례 가요~’

드디어 딸에게서 전화가 왔고 밤잠을 설쳤는데도 기쁨으로 힘이 났습니다.

막내 여동생과 친구 아녜스와 딸, 사위 다섯이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도착한 첫 순례지 배티성지는 자주 와본 곳이지만

‘그 길을 따라 걷다’ 책을 들고 최양업 신부님을 만나러 오니 또 다른 마음에 뭉클했습니다.


최초의 신학당 터에서 안내를 들으며 어렵게 공부시킨 세 신학생을 멀고 먼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보내놓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스승 신부님께 잘 보살펴 달라는 걱정의 편지를 보냈던 최양업 신부님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성소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최양업 신부님을 닮은 사제들이 많이 나기를 기도했습니다.


봉암성지에 도착했을 때는 세찬 소나기 때문에 옷과 신발이 다 젖었는데

이런 빗속에서도 신부님은 신자들을 찾아 걸으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고마웠습니다.

비바람이 부는데도 우리처럼 책자를 들고 순례 온 형제자매를 만나니 서로 반가워 인사를 나누며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미사 봉헌을 하고 새로 시작하는 성지를 하느님께서 잘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배티신학교에서 공부했던 김 사도 요한이 살았던 방축골 마을에 서서

비록 사제는 못되었어도 가족들과 함께 순교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배론 성지 신부님 묘소에 오르는 길은 계단이 너무 높아 힘들었지만 죽기 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올라갔습니다.

최양업 신부님께 절을 올리며 ‘천당에서 행복하시지요~’ 인사했습니다.

근 12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며 양 떼들을 돌보신 신부님은

단 한 명의 신자를 위해서도 몇 십리 길을 단숨에 달려가셨고

쉬지도 못하고 포졸들을 피해 순방하시느라 갖은 고생을 하셨는데

천당에서 편히 쉬시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이, 사위가 새 차를 뽑아서 스타리아를 타고 부제 때 잠시 체류했던 신시도에 도착하니

코로나 때문에 새만금 33센터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길 건너 주차장에서 체류지를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교우들을 만나고 싶어 조선에 남도록 해달라고 함장에게 호소했지만 거절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야 했던 최양업 부제님이 생각나서 남몰래 눈물을 찍어내었습니다.


신시광장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난파 체류지’라는 안내판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 땅을 내어준 군산시에 감사하고

코로나로 아무도 없는 텅 빈 큰 광장 한쪽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이렇게라도 순례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첫 번째 편지를 쓴 도앙골 교우촌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큰 시복시성기원비가 세워져 있는데 글자 없는 비석이었습니다.

빨리 시복이 되고 시성이 되어 글자가 채워지기를 기도하며

오랜 사목 순방을 마치고 쉴 곳을 찾은 도앙골 교우촌에서 편안한 잠을 주무셨기를 바래 보았습니다.

신부님의 탄생지인 청양 다락골 새터에 도착하니까 어느덧 뜨거웠던 햇볕이 수그러들었습니다.

안내서를 읽으며 우리에게 최양업 신부님을 보내주신 훌륭하신 조부모님과 부모님들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순방지이며, 복사인 조화서 성인이 사셨던 남방제 교우촌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부님을 모셨던 성인에게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코로나가 더욱 심해져서 8개월 만에 손꼽던 순례를 다시 시작했을 때는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신경주사를 맞고 출발했습니다.

안양 수리산에서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니

성지 신부님께서 청주교구 양업 순례단과 야고보 순례단을 안다고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특히 양업순례단에서 만든 십자가의 길 기도문을 부친이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 묘소로 올라가는 길에

돌에 새겨 순례객들이 기도할 수 있게 해놓았다며 자랑하시고, 고맙다고 인사하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종로성당 박물관에는 너무나 많은 순교자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신앙을 증거하는 장면을 알기 쉽게 만들어 놓아 ‘아!’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목이 메는 존경과 경외심, 참혹함으로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성전 안으로 들어가 조배를 하는데 파이프 오르간을 연습하는 연주자가 있어

난생처음 가까이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성가를 맘속으로 따라 부르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좌포도청 터를 순례하고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께서 순교하신 당고개순교성지에서는

촛불을 봉헌하며 무릎 꿇고 가만히 기도드렸습니다.

장남인 최양업 토마스와 옥중에서 굶어 죽은 젖먹이 막내아들까지 두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한 장한 어머니이신데

남겨진 아들들이 눈에 밟혀 어찌 순교하셨을까! 그 가슴 에이는 애절함을 어떻게 억누르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세례성사를 주었다는 멍에목 성지는 벌써 몇 번째 순례 왔는데

올 때마다 점점 좋아지고 있고 편안해져서 고생하시는 신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모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으니

언제나 하느님께 의탁하며 감사드립니다.’

불이 나서 집과 세간살이가 홀랑 타버렸는데도

낙담하지 않고 담대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했던 신앙선조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는 당일에 갔다 올 수 없어서 양업순례단 젊은이들과 2박 3일 순례했는데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덕분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산내성당 신부님께서 미사 후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셔서 청주교구에서 왔다고 하니

김종강 주교님과 로마에서 같이 유학했다며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성당 마당에서 순례자 축복기도를 장엄하게 해주셔서 모두 감동하고 행복해하며

2박 3일의 순례가 은총의 시간이 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힘으로 진목정성지에 도착하여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 등 세분의 순교자가 묻혔던 원묘소 앞에서 기도드리고

최양업 신부님이 방문하셨던 진목공소를 찾아 순례했는데

아주 작고 좁은 터에서 동그마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정겨웠습니다.


살티공소를 지나 순교자 묘소를 찾는데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느라 진땀 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무사히 큰길로 나왔을 때 참았던 숨을 내쉬며 안도했습니다.

김아가다, 김영제 베드로 순교자 묘소에서는 목청껏 소리높여 순교자 찬가도 부르고,

빨갛게 익은 보리수와도 친해졌습니다.


울산병영순교성지에 도착하니 진목정성지에서 만났던 순교자들 세 분이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신 장소로

복자들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들어간다 들어간다 우리 세명 천국으로 들어간다」 노래하셨답니다.

세분 중 김종륜 루카 복자께서는 보은 멍에목에서도 잠깐 사셨다는 설명을 들으니 왠지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천정에 십자가 형태의 자연 빛이 내려와

과연 순교자들이 십자가를 통해 천국으로 들어간 것을 마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부산 오륜대순교자성지의 순교자 묘소에서는 한 가족이 모두 순교할 수 있는 용기와 굳은 믿음에 감탄했습니다.

감히 나를 비교해 볼 수도 없을 만큼 훌륭하신 신앙 선조들에게

저의 부족한 신앙을 이끌어 주십사 전구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모래사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광안대교에서 나오는 빛들과 폭죽을 쏘고 돌아가는 작은 배들마저도 아름답고,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최양업 신부님이 성사를 준 복자들의 순교지인 부산 수영장대골 성지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인데도 오가다 들러서 기도하고는 총총히 사라지는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순교하신 지 150년이 넘게 지났다는데 그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신앙 선조들과 하느님을 통해 일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감사기도가 나왔습니다.


여든여덟의 나이에 최양업 신부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좋은 날씨를 주신 하느님과 성모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세 늙은이을 태우고 순례 안내까지 잘해준 사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 하루빨리 시복시성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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