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담화제24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
제24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
가정 안에서 희년의 참된 기쁨과 희망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2024년 한 해를 돌아보며 마지막 주일을 지내는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며 가정 성화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가정 성화 주간은 신앙 안에서 삶의 귀중한 터전이며 사랑의 ‘첫 학교’이자 ‘작은 교회’인 가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이와 더불어 가정의 성화와 복음화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고 결심하는 소중한 시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인 가정은 하느님께서 몸소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사랑이 전수됩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도 이 가정에서 30년 동안 당신의 구원 사업을 준비하셨습니다. 가정은 풍요로운 인간성을 길러 내는 최초의 학교입니다. 동시에 사회를 인간화하는 데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수단이고 원초적인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미래는 바로 이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류의 미래이며 희망인 가정이 많은 위기에 직면하여 해체와 붕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혼인 제도에 대한 경시와 성 개방 풍조, 그리고 죽음의 문화 확산으로 독신을 선호하고 동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혼인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이혼율은 해마다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2019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자기 결정권이라는 기치 아래 태아의 생명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습니다. 이 밖에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노령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가정 내 존재하는 가정 폭력과 청소년들의 일탈, 결손 가정 등 가정과 관련한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정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요 교회의 위기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문제는 바로 교회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정의 위기와 해체 현상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물질만능주의와 소비문화, 극단적 개인주의와 경쟁 주의, 그리고 경제 제일주의와 영혼 없는 실용주의입니다. 인간 성숙의 근원지인 가정은 급격한 사회 구조의 변화에 함께 무너져 그 역할을 상실하고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기초 공동체인 가정이 붕괴되어 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과 위치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배우고 찾아서 우리의 가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25년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를 통하여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힌 세상에 기쁘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권고하셨습니다. 2025년 희년의 표어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이 표어는 매우 절망적인 세계 상황 속에서 인류,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희망과 신뢰를 기념하는 가운데 찾을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서 이 기쁨과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열쇠는 바로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우리는 인간 사랑의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열정, 이타주의, 내적인 힘과 영감의 원천인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형제애를 배우는 ‘최초의 교회’입니다.
가정의 모범인 나자렛 성가정은 시련과 위기가 닥쳐왔을 때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삶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도전에 용감하고 침착하게 맞섰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간직하고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힘차게 나아가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우리 각자가 고유한 방식으로 성덕을 쌓고 성화에 이를 수 있는 길입니다. 가정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감사하며 하느님과 함께 희망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한 걸음은 가정을 성화하는, 더 나아가 세상을 복음화하는 큰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걸음 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희망과 기쁨이 충만하길 바라며, 새해에도 계획하는 모든 소망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2024년 12월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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