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 담화2024년 교구장 성탄 담화문
2024년 성탄 담화문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티토 2,1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대림 시기 동안 우리는 세상에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망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 밤, 하느님의 아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다함께 모여 경축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이 거룩한 밤에,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티토 2,11)
거룩한 교회가 성탄의 신비를 거행하는 이 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 은총은 우리를 구원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 은총은 우리를 향한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 자체입니다.
이 거룩한 밤에 구원의 은총이 어둠 속의 빛처럼 우리를 비추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신앙의 빛 안에서 사람이 되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모두 구원을 얻습니다.
이처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시작이며, 완성을 향한 빛입니다. 그 빛이 오늘 밤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밤 우리를 찾아오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우리 중의 가장 연약한 아기가 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과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2. “참 빛이 세상에 오셨다”(요한 1,9)
오늘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요한 1,9) 오셨습니다. 이 빛은 생명의 빛이요 구원의 빛입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구원의 빛은 우리의 기대와 희망과는 달리 화려하고 편안한 궁전이나 관저에서 권력자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연약한 모습으로 구유 위에 나타났습니다. 이분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고 죽음의 사슬에서 해방하실 구세주이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어둠의 땅은, 세상의 가장 작고 힘없는 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머무실 곳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연약한 사랑으로, 자기를 내어놓는 온전한 사랑을 주시고자, 우리와 같은 힘없는 아기의 모습을 취하신 것이고, 이것이 어둠에 싸인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던 주님의 천사는 목자들에게 주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연약한 모습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의 모습이라고, 세상 누구보다도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그 작고 힘없어 보이는 사랑은 끝내, 십자가에서 다시 한번 희생의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며, 그것이 사랑이신, 스스로 연약한 모습을 취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임을 알게 하는 표징이라고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탄생과 죽음으로 드러나는 한결같은 사랑의 연약함과 낮은 사랑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쁨과 희망을 바라봅니다.
오늘 맑은 눈으로, 작은 이로 오시는 그 분을 바라보고 경배합시다.
3.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오늘 우리는 시대의 어둠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운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탓이 큽니다.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놓으려는, 가장 높은 곳에 서게 하려는 우리의 욕망은 세상 안에 전쟁과 갈등으로 평화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벌이는 살육과 힘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이에게 가하는 폭력은 우리의 어둠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한반도, 아픈 역사의 주인공들도 깊은 어둠을 향하고 있습니다.
형제들과 원한의 선을 긋고, 서로를 위협한 70여 년의 시간은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통치자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권자들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통제하려는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백성들은 물론 국가 전체를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어둠으로 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분의 한 없는 자기 비움의 사랑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사랑과 정의를 위해 나를 낮추고 희생하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심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다시 이 어둠을 뚫고 희망의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사랑의 신비를 받아들일 때,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희망과 평화의 땅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것이 빛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바입니다.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앞에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 앞에 모두 기꺼이 무릎 꿇읍시다.
독선과 아집의 높은 담을 허물고, 이기심과 욕망의 빗장을 풀어 오시는 주님을 모실 마음의 참 구유를 준비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빛으로 어둠을 뚫고 새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우리로 거듭나는 밤이 됩시다. 그리고 그 빛을 온 세상을 향하여 비추는 이들이 됩시다.
“모든 사람이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이사 52 참조) 아멘.
2024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