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교구장 담화2016년 교구장 성탄 담화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6-12-23 조회수 : 1311

2016년 성탄 담화문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오늘 구세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 탄생의 기쁨과 평화가 신자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온 세상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2. 마태오 복음 사가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의미를 밝혀 줍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빛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빛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은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맞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요한 1,11 참조).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고,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 3,19 참조).


  3.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2,46).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빛으로 빛을 보고(시편 36,10 참조), 그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공동번역 에페 5,8 참조).
  요한 복음이 말하는 세상의 어둠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대비는 단지 2,000여 년 전 이스라엘에 태어나신 예수님 시대의 상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아직도 어둡고,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은 언제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선포하는 이들이며, 이 어두운 세상을 주님의 정의와 평화의 빛으로 비추어 주는 이들입니다.


  4. 지난 한 해 우리 국민은 어둠이 짙은 세상 안에서 큰 좌절과 절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가 지났지만 정치 권력자들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에 관한 외침은 외면당하고, 대기업은 각종 비리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피하며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자녀를 대학에 특례 입학시킨 교육 비리 앞에서 수많은 학생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국가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자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하게 했던 사실이 드러났으며, 사리사욕에 눈먼 이들은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등 헌정 질서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국민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삶 속에서 거듭 감수해야 했던 좌절과 절망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수백만의 국민들이 밝힌 촛불은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하는 촛불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둡고 암담한 현실 앞에서 깨달은 정의와 평화의 촛불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쌓이고 쌓인 불평등, 불공정, 불의를 근절하려는 갈망이 담긴 촛불이었습니다.


  5.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며(공동번역 요한 1,5 참조),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을 통해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탐욕과 정치 범죄의 희생자들을 증가시키며 권력의 행사를 공동선이 아니라 어떤 파당이나 통치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왜곡하는 온갖 정치 형태는 배척”(사목헌장, 73항)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은 자신의 특권을 좀체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안위보다 훨씬 드높은 것”임을 강조하시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복음의 기쁨, 218항)고 역설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서 주님의 빛을 선포함으로써 기쁨과 희망으로 현 세상을 바꾸는 이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겪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의 밝은 빛을 선포하는 이들입니다. 비록 우리의 현 상황이 암울하고 어둡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우리 사회를 주님의 빛으로 비추어 기쁨과 희망,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6.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오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청하며,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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